No.04
같은 흙을 두고 다른 숫자가 나오는 이유
이번 호 한 문장
흙에 가격이 붙었습니다. 그 값의 근거는 누가 확인했을까요?
✏️ 에디터 노트 · Editor's note
안녕하세요. 전 세계 토양 복원의 흐름을 읽는 뉴스레터, 모스픽입니다.
흙 1톤에 탄소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정확한 방법은 흙을 직접 채취해 분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넓은 농지나 산 전체를 파볼 수는 없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일부 지점만 측정하고, 나머지는 예측 모델로 계산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산한 토양탄소를 기준으로 크레딧이 거래됩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이런 말을 자주 마주쳤습니다. "그건 측정된 값이 아니라 추정한 값입니다." 올해 들어 그 추정을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요.
— 모스픽 에디터 드림
🌱 WHY — 왜 지금 그 숫자가 문제인가
흙 속 탄소가, 실제로 거래되는 자산이 됐습니다.
올해 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농업기술 기업 인디고 애그(Indigo Ag)와 12년 계약을 맺고 토양탄소 크레딧 285만 건을 사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성사된 토양탄소 거래 가운데 가장 큰 규모입니다. 두 회사의 세 번째 거래인데, 2024년 4만 건, 2025년 6만 건이던 물량이 단숨에 뛰었습니다.
그러자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그 숫자는 정말 맞는 걸까.
예측 모델이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그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검증할 방법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잘 예측하는 기술보다, 그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술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 호 주요 뉴스 · 3
News 01 — 숫자는 왜 스무 배 차이 났을까

- 무슨 일이 있었나유엔 산하 기후 전문가 협의체(IPCC)는 농경지와 초지의 흙이 1년 동안 붙잡아둘 수 있는 양을 이산화탄소 환산 기준 4억 톤에서 86억 톤 사이로 추정합니다. 같은 질문에 답이 스무 배 넘게 벌어진 겁니다. 지역마다 토양과 기후가 다른 탓도 있지만, 연구마다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이 제각각인 것도 큰 이유입니다. 예일대 환경대학원 연구진은 이런 상황을 '증거 공백'이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 대부분이 북반구의 작은 실험 농지에서 나왔거든요.
연구진의 해법은 단순했습니다. 다시 파보는 것. 예일대 팀은 미국 뉴욕 허드슨밸리에 있는 젖소 목장의 밭 80곳에서 흙을 떠낸 뒤, 시간이 지나 같은 자리를 다시 떠냈습니다. 두 시점을 비교하니 흙 속 탄소가 실제로 얼마나 변했는지가 훨씬 또렷하게 잡혔습니다. - 쉽게 말하면모델은 예측이고, 실측은 확인입니다. 예측이 맞았는지 알려면 언젠가는 흙을 다시 파봐야 하고요.
- 왜 중요한가빠져나가는 속도만 느려진 것을 실제로 늘어난 것처럼 계산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기 중 탄소는 그대로인데 장부의 숫자만 늘어납니다.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AI와 위성 관측으로 흙 속 탄소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추정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일대 브래드퍼드 교수는 이런 기술도 결국 실제 흙을 다시 측정한 결과와 비교해 검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 값이 직접 파서 확인한 값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출처 · Yale School of the Environment, Market Correction (Canopy, 2026) · Potash et al., Measure-and-remeasure as an Economically Feasible Approach to Crediting Soil Organic Carbon at Scale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20, 024025, 2025)
News 02 — 유럽이 흙의 탄소에 기준을 세웠다

- 무슨 일이 있었나7월 9일, 유럽집행위원회가 흙의 탄소를 인증하는 규칙을 확정했습니다. 대상은 일반 농경지에서 짓는 농사와 농림복합(나무와 작물을 함께 기르는 방식), 이탄지처럼 물을 머금은 땅의 복원, 그리고 나무 심기입니다. 관문은 까다롭습니다. 탄소가 정말 늘어난 게 맞는지, 이 사업이 없어도 어차피 일어났을 변화는 아닌지, 나중에 탄소가 다시 빠져나가면 누가 책임질지까지 따집니다. 이걸 통과한 활동만 크레딧을 받습니다.
논쟁도 따라왔습니다. 환경단체 Carbon Market Watch는 초안을 고쳐오는 과정에서 생물다양성 같은 다른 환경 가치를 요구하는 조항이 약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이 평가는 초안을 두고 한 것이고, 최종본은 그 초안을 다시 손본 결과입니다. 아직 두 버전을 나란히 비교한 분석은 없습니다. - 쉽게 말하면상품에는 규격이 필요하죠. 토양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잣대로 재고 검증해야 시장이 그 숫자를 믿고 사고팔 수 있으니까요.
- 왜 중요한가이번 제도는 기업에 감축을 강제하는 규제가 아닙니다. 대신 토양탄소를 어떻게 인증할지를 EU가 처음으로 못 박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민간 인증기관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크레딧을 발행해왔는데, 앞으로는 공인받은 기관이 같은 규칙으로 검증합니다. 기준이 느슨하면 사업 하나만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토양탄소 시장 전체의 신뢰가 걸려 있습니다. 유럽은 지난해 12월, 회원국이 토양 건강을 조사해 보고하도록 하는 법을 이미 시행했습니다. 그 법이 흙의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판이라면, 이번 규칙은 그 값에 가격을 매기는 계산서인 셈이고요.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현재 이 규칙은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심사를 받고 있습니다. 심사를 통과하면 인증기관들이 승인 절차에 들어가고, 2027년 수확분에서 나온 첫 토양탄소 크레딧이 2028년 상반기부터 시장에 풀립니다.
출처 · European Commission, Commission Adopts Certification Methodologies for Carbon Farming under the CRCF Regulation (2026.07) · H2 Bulletin, Brussels Adopts First EU Carbon Farming Certification Methodologies (2026.07) · Carbon Market Watch, EU Carbon Farming Rulebook Takes a Slash-and-Burn Approach to Broader Ecosystem Requirements (2026.06) · European Commission, Soil Monitoring Law
News 03 — 이제 모델만으로는 크레딧이 나오지 않는다

- 무슨 일이 있었나세계 최대 탄소 크레딧 인증기관인 베라(Verra)가 올해 토양탄소 인증 기준을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개정 대상은 토양탄소 방법론 VM0042입니다. 2020년 인디고 애그와 테라카본이 만든, 이 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준이죠. 베라는 2월과 3월에 걸쳐 개정안을 공개해 의견을 받았고, 지금은 외부 전문가들이 검토하고 있습니다.
바뀌는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델을 쓰더라도 일정 기간마다 실제 흙을 다시 파서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 모델이 내놓은 값과 실제로 판 흙의 값이 어긋나면 그만큼 발급 크레딧을 조정합니다. 흙을 어디서 어떻게 떠서 분석할지에 대한 절차도 새로 붙었고요. - 쉽게 말하면모델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모델 위에 검증을 한 겹 더 얹자는 거죠.
- 왜 중요한가눈에 띄는 건, 규제가 강제하기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신뢰를 잃으면 크레딧이 팔리지 않으니까요. 대신 비용이 늘어납니다. 흙을 반복해서 파고 실험실에 보내는 일은 모델을 돌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이 듭니다. 신뢰를 얻는 대신 들어오기는 어려워지는 거래인 셈입니다.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관건은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 새 기준을 언제부터 적용하느냐입니다. 유예가 길면 변화가 늦어지고, 짧으면 진행 중인 사업들이 흔들립니다. 실측 비용이 소규모 농가나 작은 사업을 밀어내지는 않을지도 함께 지켜봐야 하고요.
출처 · Verra, Major Revision to VM0042 Methodology for Improved Agricultural Land Management · Verra, VM0042 Improved Agricultural Land Management v2.2 · ICVCM, Integrity Council Approves First Sustainable Agriculture Methodologies from CAR and Verra
📖 이번 호 용어
뉴스를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개념입니다.
- 탄소 크레딧탄소를 줄이거나 흡수한 양을 인증해 거래할 수 있게 만든 것. 배출을 줄이기 어려운 기업이 이를 구매해 자신의 배출량을 메웁니다. 종류는 여러 가지입니다. 나무를 심거나 숲을 지키는 산림 크레딧, 공장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땅속에 묻는 포집·저장 크레딧, 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크레딧까지요. 이번 호에서 다루는 토양탄소 크레딧은 그중 하나입니다. 농지나 초지의 흙이 붙잡아둔 탄소를 근거로 발급되죠. 다른 크레딧과 다른 점은, 그 탄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세면 되지만 흙은 파봐야 압니다.
- 배출권과 탄소 크레딧둘 다 탄소를 다루지만 만드는 방식이 다릅니다.
• 배출권은 정부가 기업에 나눠주는 배출 허용량입니다.
• 탄소 크레딧은 탄소를 실제로 줄이거나 흡수한 활동을 인증받아 새롭게 만들어집니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것은 모두 탄소 크레딧입니다.
🔎 키워드 깊게 파기 — 같은 깊이보다 같은 무게
등가토양질량(ESM)
흙 속 탄소량은 보통 땅을 30센티미터 깊이까지 파서 계산합니다. 국제 표준도 그 정도는 파보라고 하고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농사 방식을 바꾸면 흙의 밀도도 달라집니다. 밭을 갈지 않는 무경운 농법으로 바꾸면 표층이 다져져 흙이 촘촘해지는데, 그러면 같은 30센티미터를 파도 이전보다 더 많은 흙이 담깁니다. 탄소 농도는 그대로인데 퍼올린 흙이 늘었으니, 총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24년간 이어진 경운 실험이 이 차이가 얼마나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60센티미터까지 파본 결과, 깊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값이 흙의 무게를 맞춰 계산한 값보다 누적 탄소량을 약 15퍼센트, 헥타르당 30.6톤 더 크게 잡았습니다. 반대로 기울기도 합니다. 흙이 성겨진 밭이라면 같은 깊이를 파도 담기는 흙이 줄어드니, 탄소 변화량을 약 17퍼센트 적게 계산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문제는 오차가 생긴다는 게 아닙니다. 흙의 밀도가 어떻게 바뀌었느냐에 따라 탄소를 더 많게도, 더 적게도 계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등가토양질량(Equivalent Soil Mass·ESM)입니다. 깊이를 똑같이 맞추는 대신, 비교하는 흙의 무게를 똑같이 맞추자는 거죠.
같은 깊이를 팔 것인가, 같은 무게를 팔 것인가. 온타리오의 밭에서는 이 선택 하나가 헥타르당 약 30톤의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 COFN Lens
기준이 까다로워지면 진입이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 변화가 반갑습니다.
토양은 오랫동안 관심 밖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나무는 몇 그루인지 세면 되지만, 흙은 파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값을 매기지 않았고, 되살렸다는 말도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규칙이 생긴다는 건 이제야 이 시장을 진지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크레딧을 만드는 일과 땅을 되살리는 일은 목적이 다르지만,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이미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셈이에요.
💬 다음 호 예고
이번 호는 흙의 탄소를 팔려는 사람들 이야기였죠. 그런데 크레딧을 팔지 않으면서도 흙에 돈을 쓰는 쪽이 있습니다. 공급망의 흙을 되살리겠다는 기업들, 그리고 여기에 예산을 붙이는 정부요. 그 약속들을 나란히 놓아보면 이상한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하나같이 넓이로 말한다는 거예요. 몇만 헥타르, 몇 퍼센트. 정작 그 흙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숫자는 좀처럼 안 보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흙으로 몰리는 돈이 무엇을 바꾸는지, 그리고 그 성과는 무엇으로 증명되는지 들여다봅니다.
2주 뒤, 같은 자리에서 뵐게요. 🌍
이 글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