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03
불에 탄 흙은 빗물을 밀어낸다
이번 호 한 문장
불이 지나간 땅에 내리는 첫 비는, 남아 있던 흙마저 데려갑니다.
✏️ 에디터 노트 · Editor's note
안녕하세요. 전 세계 토양 복원의 흐름을 읽는 뉴스레터, 모스픽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유럽은 불타고 있습니다. 남유럽 곳곳이 불과 씨름하는 여름이에요.
산불 뉴스는 대개 몇 헥타르가 탔고 언제 잡혔는지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흙의 시간표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까맣게 탄 땅에서는 첫 비가 회복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흙을 통째로 쓸어 가거든요. 세계가 불길을 지켜보는 사이, 이번 호는 카메라가 떠난 뒤의 흙을 들여다봅니다.
— 모스픽 에디터 드림
💡 WHY · 왜 지금 주목해야 할까요?
불이 꺼져도, 흙은 몇 해를 헐벗은 채 버팁니다.
올여름 지중해는 예년을 훌쩍 넘는 규모로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불 복원에서 중요한 숫자는 탄 면적이 아니라, 흙이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첫 우기가 가장 큰 고비이긴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새 뿌리가 흙을 다시 붙들어줄 때까지 그 비탈은 몇 해를 위태롭게 버팁니다.
문제는 그 긴 공백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나무를 심어야 할지 자연에 맡겨야 할지는 나라마다 답이 다르고, 되살아났는지를 무엇으로 확인할지도 합의된 기준이 없습니다. 불은 나무만 태운 게 아닙니다. 흙이 물과 생명을 붙잡는 힘까지 태웠는데, 그 힘이 돌아왔는지를 우리는 아직 제대로 답하지 못합니다.
🗞️ 이번 호 주요 뉴스 · 3
News 01 — 🔥 되돌리기 가장 어려운 땅이 타고 있다

- 무슨 일이 있었나2026년 여름, 6월의 기록적인 폭염이 대지를 말려놓은 탓에 지중해 유럽이 다시 불타고 있습니다. EFFIS 집계로 EU 누적 피해 면적은 7월 중순 16만 헥타르, 화재 건수는 1,000건을 넘었습니다. 예년 같은 시기의 두 배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불은 7월 9일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에서 났습니다. 최소 13명이 숨진, 안달루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이 삼킨 건 울창한 숲이 아니었습니다. 폭염에 바싹 마른 에스파르토 풀과 관목, 반건조 지대의 메마른 목초지였습니다.
- 쉽게 말하면산불은 흙을 '물을 안 먹는 흙'으로 바꿔놓습니다. 불의 열이 흙 속에 물을 튕겨내는 얇은 막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가 내려도 빗물은 땅에 스미지 못하고, 재와 흙을 데리고 비탈을 흘러내립니다. 지금 지중해에서 타고 있는 저 비탈들이, 몇 달 뒤 첫 가을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왜 중요한가문제는 그 흙이 원래도 얇았다는 점입니다. 반건조 지대의 흙은 유기물이 적고 층이 얕아, 한 번 쓸려나가면 되돌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립니다. 회복이 아니라 사막화 쪽으로 기울 수도 있고요. 게다가 이런 땅에서는 나무를 심어 되살린다는 익숙한 해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나무가 아니라 관목과 풀이 흙을 붙잡고 있던 땅이니까요. 그래서 산불 복원의 첫 단계는 심는 일이 아니라, 흙을 붙잡는 일입니다.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불이 잦아든 뒤 찾아올 첫 우기가 시험대입니다. 각국이 응급 안정화(사면 정리·멀칭·침사지)로 흙을 얼마나 붙잡아 두는지가 이후 몇 해를 좌우합니다.
출처 · EFFIS / JRC, Wildfire Statistics — Europe 2026 Season (Copernicus, 2026.07) · Al Jazeera, Wildfires in southern Spain kill at least 12 (2026.07, 보도 이후 13명으로 집계)
News 02 — 🌲 심을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 무슨 일이 있었나큰 불이 지나간 뒤 각국이 마주하는 질문은 같습니다. 심을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독일은 자연회복을 원칙으로 삼되 더딘 곳에만 보완 조림을 하고,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뒤 해안방재림 피해 구간 164km의 88%에 흑송 등을 직접 심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구체적인 답은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2025년 3월 초대형 산불을 겪은 경북도는 5개 시·군 민유림 8만 9,804㏊ 가운데 83.7%를 자연복원에 맡기고, 16.1%에만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씨앗이 날아들 곳이 없거나 흙이 심하게 쓸려나간 곳, 산사태 위험이 큰 급경사지와 사람 사는 곳 가까운 산만 조림을 병행합니다. 땅의 조건에 따라 방식을 달리하는 '기능별 맞춤 복원'입니다.
- 쉽게 말하면심으면 빠르고 눈에 보이지만, 비용이 크고 실패도 잦습니다. 기다리면 더 건강하게 돌아오지만, 시간이 걸리고 그사이 흙이 쓸려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흐름은 '한쪽을 택한다'가 아니라 '땅마다 다르게 본다'입니다. 실제로 의성군은 올봄 227㏊에 나무를 심었고, 같은 군의 고운사 사찰림은 자연에 맡겼습니다.
- 왜 중요한가그린피스가 지난 5월 내놓은 고운사 사찰림 보고서에 따르면, 면적의 97%가 탄 이 숲은 주변 유역까지 놓고 보면 4분의 3 이상에서 자연복원이 활발했고, 식생 지수(NDVI)도 산불 직후 0.14에서 0.5 이상까지 올라왔습니다. 50년 빈도 호우를 가정한 모형에서도 토양 침식 위험 구간이 51.1%에서 10.8%로 줄었습니다. 다만 그 초록은 씨앗이 아니라, 살아남은 뿌리에서 다시 돋은 맹아(萌芽)입니다. 식생이 덮이면 흙은 덜 쓸려나가지만, 흙이 회복된 건 아닙니다. 칠레의 지중해성 산림을 14년간 추적한 연구에서도 흙은 불 이전의 양분 균형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땅 위는 몇 해면 돌아오고, 흙은 훨씬 느리고, 뿌리마저 잃은 비탈에는 다시 돋을 것조차 없습니다.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자연복원 구역이 스스로 돌아오는지, 조림 구역의 묘목이 살아남는지는 몇 해에 걸쳐 판가름 납니다. 관건은 그때까지 흙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느냐입니다.
출처 · 경북일보, 초대형 산불 피해지 복원, 자연회복과 조림 병행이 해법 (2026.07) · 구미뉴스, 초대형 산불피해지, 자연·조림 상생 뉴패러다임 켠다 (2026.07) · 비즈니스포스트, 경북 산불 이후 자연복원 거친 고운사 사찰림 보고서 (2026.05) · 동양뉴스, 의성군 봄철 조림사업 완료 (2026.05) · University of Göttingen, Wildfires reshape forest soils for decades (2025.12)
News 03 — 🧪 같은 흙, 다른 판정

- 무슨 일이 있었나2025년 1월 이턴 화재는 알타디나 일대에서 약 9,400채 건물을 태웠습니다. 정화를 맡은 미 공병대(USACE)는 잔해와 함께 불탄 건물 아래 표토 15㎝를 걷어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재난 복구를 총괄하는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정화가 끝난 자리에 오염이 남았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몇 달간 거부했거든요. 불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입장이 바뀐 건 작업자들이 정화 절차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습니다. FEMA는 2026년 1월 검사 비용을 대기로 했고, 전소된 5,600채 가운데 100곳이 무작위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검사를 맡은 미 환경보호청(EPA)이 결과를 내놓으며 연방의 정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100곳 가운데 표층 토양은 95곳이, 지하 토양은 98곳이 연방 납 기준치를 밑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결과를 캘리포니아 기준에 대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쉽게 말하면같은 흙을 두고 답이 둘로 갈립니다. 연방 스크리닝 레벨(200ppm)으로는 100곳 중 5곳이 기준을 넘었지만, 더 엄격한 캘리포니아 기준(80ppm)으로는 17곳이 넘었습니다. 흙은 그대로인데, 어디에 선을 긋느냐가 '합격'과 '불합격'을 갈랐습니다.
- 왜 중요한가답이 갈린 건 흙 때문이 아닙니다. 조사를 어떻게 설계했느냐 때문입니다. 무엇을 잴 것인가. 이번 조사는 납만 봤습니다. 어떻게 잴 것인가. 한 부지에서 뽑은 30개 지점의 흙을 깊이별로 하나씩 섞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선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이 셋을 정하는 순간, 결론의 절반은 이미 정해집니다. 전문가들은 이 조사가 애초에 안전성을 가리도록 설계된 방식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종합 검사를 하지 않겠다던 결정을 뒤늦게 정당화하는 조사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끝났다'는 선언은, 결국 측정의 설계에서 나옵니다.
-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하나EPA는 이번 데이터를 앞으로의 전국 산불 대응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산불에서 '정화가 끝났다'고 말할 근거도 이 설계를 따르게 됩니다.
출처 · US EPA, EPA's Eaton Fire Soil Sampling Confirms Federal Cleanup Protocols Effectively Remediated Burn Debris Contamination (2026.05) · NBC News, Los Angeles-Area Wildfires Left Lead in Soil, But How Much and Where Remains Contentious (2026.05) · CBS Los Angeles, EPA to test soil at 100 properties in Eaton Fire burn scar (2026.01)
📖 용어 노트
이번 호에 나온 낯선 말들, 풀어서 정리했어요.
- 맹아(萌芽)불이나 벌채로 지상부를 잃은 나무가 살아남은 뿌리와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을 틔우는 것. 참나무류는 맹아력이 강해 산불 뒤 빠르게 숲을 되찾습니다. 다만 이는 새로 생겨난 나무라기보다, 땅속에 남아 있던 개체가 다시 올라오는 것에 가깝습니다.
- 스크리닝 레벨(screening level)토양 오염 조사에서 추가 검토가 필요한지를 가르는 기준값. '이 아래는 안전, 위는 위험'을 뜻하는 선이 아니라, 넘으면 더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기관과 지역에 따라 값이 달라, 같은 흙도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판정이 갈립니다.
- EFFIS · Copernicus유럽 산불정보시스템(European Forest Fire Information System). EU 코페르니쿠스 위성 프로그램의 일부로, 위성 영상을 분석해 유럽 전역의 산불 피해 면적을 하루 두 번 갱신합니다. 본래 약 30㏊ 이상의 산불을 대상으로 했고, 2018년부터는 센티널-2 자료를 더해 그보다 작은 불도 탐지합니다. 유럽의 산불 규모를 나라별로 비교할 때 기준이 되는 공식 데이터원입니다.
🔎 키워드 깊게 풀기
산불 이후 흙이 물을 밀어낸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토양 발수성(soil water repellency)입니다. 불의 열이 낙엽과 유기물에 든 기름·왁스 성분을 기화시키고, 그 물질이 흙 알갱이 표면에 들러붙어 물을 튕겨내는 막을 만듭니다. 모래가 많고 건조한 흙일수록 잘 생깁니다.
그런데 '흙이 비를 밀어낸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이 막은 표층에 생기기도 하지만, 불이 셀수록 지표면보다 몇 cm 아래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위는 재와 푸석한 흙으로 덮여 있고요. 맨 위 몇 센티미터는 여전히 비를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 물이 아래로 빠지지 못할 뿐이죠. 물이 아래로 빠지지 못하니 지표유출이 급격히 늘고, 그 물이 비탈을 깎으며 흙을 실어 나릅니다. 산불 피해지에서 토석류가 잦은 이유입니다.
그렇게 떠내려가는 흙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물에 가장 쉽게 실려 나가는 건 미사와 점토, 즉 양분과 수분을 붙잡아두는 가장 고운 입자입니다. 겉보기에 땅은 그대로 남아 있어도, 흙을 흙이게 하던 알맹이가 먼저 빠져나가는 셈입니다.
이 막은 비를 맞고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서서히 사라집니다. 문제는 '그사이'입니다. 게다가 위험이 걷히는 속도를 정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식생입니다. 흙을 붙잡을 뿌리와 지피물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 비탈은 무방비 상태로 남습니다.
🧭 COFN Lens
이번 호의 세 뉴스는 전부 사람이 기준을 세우는 이야기였습니다. 심을지 기다릴지, 200이냐 80이냐, 납만 볼지 다른 것까지 볼지. 그런데 흙은 그 기준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발수층은 숫자가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고, 미사와 점토는 규정을 참고해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저희가 쓰는 이끼 기반 접근도 자연 회복을 대체하려는 게 아닙니다. 뿌리도 흙도 남지 않은 비탈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끼는 척박한 땅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아 자연 천이의 출발점을 만드는 개척종입니다. 쓸려나가려는 표토를 붙잡는 동시에 유기물과 양분을 쌓아 올려, 다음 식생이 뿌리내릴 바탕을 만듭니다. 멈춰 선 회복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측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흙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읽어내기 위해서요. 토양유기탄소가 쌓이는지, 미생물이 돌아오는지. 그 답은 흙만이 알고 있고, 우리는 그걸 읽어낼 뿐입니다.
💬 다음 호 예고
흙이 되살아났다는 걸, 우리는 무엇으로 증명할까요?
그 답을 내는 방식을 두고 지금 곳곳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탄소 시장에서는 모델로 추정한 흙과 직접 파본 흙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유럽에서는 흙의 건강을 의무적으로 재게 하는 첫 법이 막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세계가 흙을 재는 방식을 들여다봅니다.
모스픽은 격주로, 땅의 관점으로 찾아갑니다. 2주 뒤 같은 자리에서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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